[2008년 제4호]
국제영화제 만들기 혹은 영화를 통한 문화의 다양성 만들기
제31회 홍콩국제영화제는 아시아영화상(AFA)을z 제정하면서 전체적인 규모를 늘렸다. 지난 3월 20일에 개막했던 홍콩국제영화제에는 아시아의 유력한 영화인들이 대거 참석해서 이목을 끌었다. 레드 카펫 행사로 시작된 AFA 행사장에는 뤽 베송 감독과 홍콩 최고의 감독으로 부상한 두기봉(조니 토)을 비롯하여 량차오웨이(양조위), 류더화(유덕화) 등 홍콩 스타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뿐 아니라 와타나베 겐을 비롯한 일본의 주요 배우들도 참석했다. 개막작은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였고, 박찬욱 감독과 주연을 맡은 임수정, 정지훈을 비롯하여 송강호, 이병헌, 김혜수, 정우성 등이 카펫을 밟았다. 심사위원으로는 마르코 뮐러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크리스티앙 죈 칸영화제 영화부문이사를 영입했다.
홍콩국제영화제(www.hkiff.org.hk)의 폭풍이 지나간 후 여러 말들이 나왔지만 영화제의 목표는 그 어느 때보다 뚜렷했다. 네트워크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홍콩국제영화제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유럽의 칸, 베니스, 베를린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는 것에서 가늠할 수 있듯이 최근 국제영화제의 위상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고 즐기는 축제의 기능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축제의 뒷자리에서는 마켓과 비즈니스가 더욱 활발하게 펼쳐진다. 흔히 영화를 놓고 이야기하는 ‘예술과 산업’의 추구가 ‘영화제’라는 형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과거에는 영화제의 주도적 기능이 뛰어난 작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예술’에 놓여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산업적인 영향력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여러 영화제들이 이러한 요구를 수용해내는 결과는 사뭇 다르다. 초창기에 이목을 끌었던 도쿄국제영화제(www.tiff-jp.net)는 필요 이상의 타협과 제한으로 인해 과거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도쿄국제영화제는 프레스와 바이어들에게 특정 섹션만 입장하도록 제한을 두어 원성을 샀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www.filmfest.org.sg)는 언론 시사를 비디오로 상영하여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타이의 방콕국제영화제는 영화 전문가들보다 관광 관련 기자를 더 우선하기로 유명하다. 한 국가의 주요한 행사인 국제영화제를 통해 ‘산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화제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영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오늘날 아시아의 국제영화제가 새롭게 부상하면서 겪고 있는 딜레마이다. 부산과 비슷한 시기인 10월 말에 열리는 도쿄국제영화제는 이후 아시아의 다양한 국제영화제들이 문을 여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미숙한 행사 진행과 변칙적인 행사 운영은 스스로의 위상을 떨어뜨린다. 도쿄국제영화제가 새롭게 정비한 마켓의 경우도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체를 끌어들임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최근 도쿄국제영화제는 행사 기간을 9월로 옮기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 또한 영화제의 유지와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국제영화제들의 개최 시기는 여러 가지 이해와 양보가 필요한 복잡한 사안이다. 시기 변동은 자연히 여타 국제영화제들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훌륭한 네트워크란, 변화와 조정에 대한 합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쿄국제영화제 이외에도 일본 내에는 새로운 국제영화제들이 점차적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중 주목받고 있는 것은 도쿄 긴자에서 열리는 도쿄필름엑스영화제이다. 이 영화제는 주로 아시아 신예 감독들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 국내 영화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하여 김기덕 감독이 심사위원을, 안성기 씨가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도쿄필름엑스와 더불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후쿠오카영화제(www.focus-on-asia.com)는 특별전과 회고전 프로그램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일본 영화제의 특성을 유지해온 것은 야마가타다큐멘터리영화제(www.yidff.jp)이다. 이것은 격년으로 치러지지만 아시아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위상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포맷과 다양한 형식의 영화제를 치러낼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만큼 일본의 국제영화제들은 지속적인 연대를 끌어내는 주요한 아시아의 창구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아시아의 대다수 국가들이 ‘저작권’을 무시한 음성적인 유통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의 문화 시장은 철저하게 ‘저작권’을 중시하고 있다. 오늘날 영화 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이러한 문화적 기반 위에서 가능해진다. 향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영화 시장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국의 인프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더불어 문화 소비 풍토를 바꾸는 것에 대한 고민이 될 것이다(알려졌다시피 IT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불법다운로드 문화와 중국어권의 불법 DVD 시장은 극장 문화와 부가판권 시장의 유지를 어렵게 만든다. 특히 부가판권 시장은 영화에 대한 재투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국가와 영화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서 아시아의 영화제를 살펴보고 있노라면 ‘국가’의 영향력이 여실한 탓에 자율성과 기능이라는 측면이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타이에서 개최하는 방콕영화제(www.bangkokfilm.org)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제를 주최하는 것은 타이의 관광청이다. 자연스럽게 영화제의 목표가 ‘영화’에 놓여 있기보다는 ‘관광’과 ‘홍보’에 집중된다. 최근 타이의 영화가 국제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대중영화로서 타이의 무예타이를 소재로 한 <옹박>은 2편을 내놓으면서 국제적인 상업프로젝트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타이의 영화산업 인프라 중 우수하다고 알려진 것은 영화의 후반작업을 하기가 좋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난해 열린 타이 영화제의 슬레이트 바닥에는 ‘제목:방콕국제영화제’, ‘감독:타이관광청’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영화제 기간 내내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하는 기관이, 타이의 영화인들도 타이영화협회도 아닌 타이관광청이다 보니 관광청장이 주목받는 일이 많다. 물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연간 8천만 달러(한화 8백억 원)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해외 영화 로케이션 유치 사업은 타이 영화산업의 전체 규모를 무색케 할 정도다. 타이의 풍물을 알리는 관광사업과도 긴밀하게 연동된 영화 로케이션 사업은 관광청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이다. 당연히 잿밥에 관심을 둔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영화산업의 논리와 관광산업의 논리, 왕정국가의 정체성이 기이하게 섞인 방콕영화제는 ‘뉴웨이브’로 명명되는 타이 영화의 현재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제를 통해 자국의 역량 있는 감독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 타이 영화의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인물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다. 타이의 밀림 속에서 많은 장면을 촬영해내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현실과 환상을 오고 가면서, 내밀한 욕망을 그려낸다. 그러나 현재의 방콕영화제는 제2, 제3의 아피찻퐁을 발굴해내기보다 산업적인 인프라를 추구한다. 상업성이 높지 않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칸이나 인근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서는 수상의 영예를 안지만 정작 타이 내에서는 소수의 예술가일 따름이다. 산업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제의 기본적인 출발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작가들과 연대하는 것에서부터라면, 방콕영화제는 여전히 비판받을 구석이 많다. 그것은 비단 방콕영화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제인 상하이국제영화제(www.siff.com)의 경우에도 국제영화제라고 부르기에는 수용의 폭이 좁다. 중국 전역에 퍼져 있는 ‘지하전영’ 감독들의 신작이나 젊은 영화를 수용하기에는 무심하다. 사실 중국은 그 자체로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중국은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이다. 여기에는 타이완의 여러 영화제들〔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금마장영화제(www.goldenhorse.org.tw)일 것이다. 그러나 금마장영화제의 경우에는 국제영화제의 성격이 아니라 중국어권 영화들을 주요한 대상으로 삼고 있다〕과의 연대나 네트워크가 아직까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아시아의 많은 영화제들이 자국 중심주의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네트워크를 산업적인 부분에만 치중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작가 발굴에 무심하다는 것이다. 칸영화제의 경우 자연스럽게 영화제를 통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예술 작품에 대한 지지가 오랫동안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아시아의 많은 영화제들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곳이 어딘지는 비교적 분명해보인다. 물론 칸의 경우에도 유럽과 미국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또한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한때 영화제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 영화제가 온전히 모든 것을 안배하면서 성장하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제’라는 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화와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분위기를 창출해가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영화제들의 물적, 인적 교류는 언제나 중요한 일이다.
비교적 이러한 역할을 동남아시아에서 유지해온 것이 싱가포르국제영화제다. 이제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40개국에서 3백여 작품이 출품된 규모 있는 영화제가 되었다. 한국 영화 중에서 <여자, 정혜>는 실버스크린 부문에 초청되어, 이윤기 감독과 주연배우 김지수가 각각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해 싱가포르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은 이라크 전쟁과 그 후의 여파를 다룬 오데이 라시드 감독의 <언더익스포저 (Underexposure)>가, 영시네마 부문은 홍콩영화 <그린 햇 (Green Hat)>이 수상을 하였고, 심사위원 특별상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 (Tropical Malady)>가 수상하였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전반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격려하는 것에 관심을 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자국과 주변 국가의 영화에 대한 인지력과 연결된다. 기본적으로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의 독립영화 신작을 발굴해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필립 치아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평판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근본적인 곳에서 새롭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가 새로운 영화제를 만들면서 싱가포르국제영화제의 규모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한국에서 개최하는 국제영화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지원에 의존하는 영화제의 경우 정책의 변화에 따라 의외의 결과를 맞이하기도 한다. 이것은 영화제가 자생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본적인 자본력을 어떻게 동원해야 하느냐는 현실의 문제와 부딪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의 정책에 의해 일관된 영화제의 규모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워진다. 자국 내의 경제적인 사정에 의해 영화제의 규모가 고무줄처럼 변화하는 것도 안정된 인상을 주기 어렵다. 국가의 정책과는 다른 영화제의 자율성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영화제로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이다.
국내의 많은 국제영화제들이 종종 지자체와 부딪히는 것도 자율성이 담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화와 개발도상국의 현실에 처한 실적주의는 영화제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영화제라는 것은 방대한 소비가 아니냐는 비판이 쉽게 쏟아져 나온다. 사실 영화제의 성과는 현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 될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영화제는 자국과 아시아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일종의 문화 투자의 장이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부상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위기와 모험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라는 창구를 통해 한국 영화가 세계의 창구로 나아가는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내의 영화제와 영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과 부산 지역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해마다 영화제가 끝난 후에 추산되는 경제적 이익에 관한 데이터들이 나온다. 문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숫자 너머에 있는 문화적 에너지이다.
국적을 넘어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은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그것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이끌어줌으로써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를 비롯한 여타의 영화제들이 성장할 가능성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러한 공식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아시아의 영화국가는 ‘이란’이었다. 그러나 이란의 영화를 그 어느 곳보다 열정적으로 소개한 곳은 부산국제영화제였다. 여기에 한 가지 교훈이 있다. 이란 영화의 수용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교두보라는 역할로 확대할 수 있었다. 국제영화제라는 이름에 알맞은 국제적 규모의 네트워킹은 더 큰 문을 두드리기 위한 중요한 시도들이다.
아시아에는 영화제가 정말 많다. 앞서 소개한 영화제 외에도 주목할 만한 아시아의 국제영화제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영화제(www.jiffest.com), 인도의 뭄바이영화제(www.iffmumbai.com)와 케랄라영화제(www.keralafilm.com)가 있다. 그러나 이들 영화제는 자국 문화와 자국 언어의 폭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또한 한국에서 열리는 여러 국제영화제들이 비판을 받는 것처럼, 국제적인 규모로 나아가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아시아의 여러 국제영화제들이 성장을 하는 데 기틀이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영화산업의 유치(여기에는 촬영장소 제공, 후반작업을 위한 산업적인 지원 등이 있다)를 위해 영화제를 프로모션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산업적인 목적보다는 자국 내의 문화를 고취하고 선전하는 경우가 있다. 두 가지 성격은 자연스럽게 뒤섞이기도 한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자국의 문화(혹은 영화)를 국제적인 관심으로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국 문화(혹은 영화)의 성숙을 위해 다양한 문화(영화)를 자국 내에 소개해야 할 필요성이다. 이것은 양가성의 게임이다. 대부분 전자에 관심을 두는 것에 반해 후자의 경우는 등한시되어온 측면이 있다. 단순히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를 통해 스스로를 성숙시킬 수 있을 때 네트워크는 자연스럽게 열리게 된다. 문화의 다양화는 결국 영화제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기틀이자 영화를 통한 보편적인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셈이다.
홍콩국제영화제(www.hkiff.org.hk)의 폭풍이 지나간 후 여러 말들이 나왔지만 영화제의 목표는 그 어느 때보다 뚜렷했다. 네트워크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홍콩국제영화제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유럽의 칸, 베니스, 베를린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는 것에서 가늠할 수 있듯이 최근 국제영화제의 위상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고 즐기는 축제의 기능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축제의 뒷자리에서는 마켓과 비즈니스가 더욱 활발하게 펼쳐진다. 흔히 영화를 놓고 이야기하는 ‘예술과 산업’의 추구가 ‘영화제’라는 형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과거에는 영화제의 주도적 기능이 뛰어난 작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예술’에 놓여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산업적인 영향력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여러 영화제들이 이러한 요구를 수용해내는 결과는 사뭇 다르다. 초창기에 이목을 끌었던 도쿄국제영화제(www.tiff-jp.net)는 필요 이상의 타협과 제한으로 인해 과거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도쿄국제영화제는 프레스와 바이어들에게 특정 섹션만 입장하도록 제한을 두어 원성을 샀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www.filmfest.org.sg)는 언론 시사를 비디오로 상영하여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타이의 방콕국제영화제는 영화 전문가들보다 관광 관련 기자를 더 우선하기로 유명하다. 한 국가의 주요한 행사인 국제영화제를 통해 ‘산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화제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영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오늘날 아시아의 국제영화제가 새롭게 부상하면서 겪고 있는 딜레마이다. 부산과 비슷한 시기인 10월 말에 열리는 도쿄국제영화제는 이후 아시아의 다양한 국제영화제들이 문을 여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미숙한 행사 진행과 변칙적인 행사 운영은 스스로의 위상을 떨어뜨린다. 도쿄국제영화제가 새롭게 정비한 마켓의 경우도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체를 끌어들임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최근 도쿄국제영화제는 행사 기간을 9월로 옮기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 또한 영화제의 유지와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국제영화제들의 개최 시기는 여러 가지 이해와 양보가 필요한 복잡한 사안이다. 시기 변동은 자연히 여타 국제영화제들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훌륭한 네트워크란, 변화와 조정에 대한 합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쿄국제영화제 이외에도 일본 내에는 새로운 국제영화제들이 점차적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중 주목받고 있는 것은 도쿄 긴자에서 열리는 도쿄필름엑스영화제이다. 이 영화제는 주로 아시아 신예 감독들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 국내 영화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하여 김기덕 감독이 심사위원을, 안성기 씨가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도쿄필름엑스와 더불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후쿠오카영화제(www.focus-on-asia.com)는 특별전과 회고전 프로그램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일본 영화제의 특성을 유지해온 것은 야마가타다큐멘터리영화제(www.yidff.jp)이다. 이것은 격년으로 치러지지만 아시아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위상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포맷과 다양한 형식의 영화제를 치러낼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만큼 일본의 국제영화제들은 지속적인 연대를 끌어내는 주요한 아시아의 창구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아시아의 대다수 국가들이 ‘저작권’을 무시한 음성적인 유통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의 문화 시장은 철저하게 ‘저작권’을 중시하고 있다. 오늘날 영화 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이러한 문화적 기반 위에서 가능해진다. 향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영화 시장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국의 인프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더불어 문화 소비 풍토를 바꾸는 것에 대한 고민이 될 것이다(알려졌다시피 IT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불법다운로드 문화와 중국어권의 불법 DVD 시장은 극장 문화와 부가판권 시장의 유지를 어렵게 만든다. 특히 부가판권 시장은 영화에 대한 재투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국가와 영화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서 아시아의 영화제를 살펴보고 있노라면 ‘국가’의 영향력이 여실한 탓에 자율성과 기능이라는 측면이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타이에서 개최하는 방콕영화제(www.bangkokfilm.org)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제를 주최하는 것은 타이의 관광청이다. 자연스럽게 영화제의 목표가 ‘영화’에 놓여 있기보다는 ‘관광’과 ‘홍보’에 집중된다. 최근 타이의 영화가 국제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대중영화로서 타이의 무예타이를 소재로 한 <옹박>은 2편을 내놓으면서 국제적인 상업프로젝트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타이의 영화산업 인프라 중 우수하다고 알려진 것은 영화의 후반작업을 하기가 좋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난해 열린 타이 영화제의 슬레이트 바닥에는 ‘제목:방콕국제영화제’, ‘감독:타이관광청’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영화제 기간 내내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하는 기관이, 타이의 영화인들도 타이영화협회도 아닌 타이관광청이다 보니 관광청장이 주목받는 일이 많다. 물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연간 8천만 달러(한화 8백억 원)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해외 영화 로케이션 유치 사업은 타이 영화산업의 전체 규모를 무색케 할 정도다. 타이의 풍물을 알리는 관광사업과도 긴밀하게 연동된 영화 로케이션 사업은 관광청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이다. 당연히 잿밥에 관심을 둔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영화산업의 논리와 관광산업의 논리, 왕정국가의 정체성이 기이하게 섞인 방콕영화제는 ‘뉴웨이브’로 명명되는 타이 영화의 현재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제를 통해 자국의 역량 있는 감독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 타이 영화의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인물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다. 타이의 밀림 속에서 많은 장면을 촬영해내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현실과 환상을 오고 가면서, 내밀한 욕망을 그려낸다. 그러나 현재의 방콕영화제는 제2, 제3의 아피찻퐁을 발굴해내기보다 산업적인 인프라를 추구한다. 상업성이 높지 않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칸이나 인근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서는 수상의 영예를 안지만 정작 타이 내에서는 소수의 예술가일 따름이다. 산업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제의 기본적인 출발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작가들과 연대하는 것에서부터라면, 방콕영화제는 여전히 비판받을 구석이 많다. 그것은 비단 방콕영화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제인 상하이국제영화제(www.siff.com)의 경우에도 국제영화제라고 부르기에는 수용의 폭이 좁다. 중국 전역에 퍼져 있는 ‘지하전영’ 감독들의 신작이나 젊은 영화를 수용하기에는 무심하다. 사실 중국은 그 자체로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중국은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이다. 여기에는 타이완의 여러 영화제들〔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금마장영화제(www.goldenhorse.org.tw)일 것이다. 그러나 금마장영화제의 경우에는 국제영화제의 성격이 아니라 중국어권 영화들을 주요한 대상으로 삼고 있다〕과의 연대나 네트워크가 아직까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아시아의 많은 영화제들이 자국 중심주의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네트워크를 산업적인 부분에만 치중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작가 발굴에 무심하다는 것이다. 칸영화제의 경우 자연스럽게 영화제를 통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예술 작품에 대한 지지가 오랫동안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아시아의 많은 영화제들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곳이 어딘지는 비교적 분명해보인다. 물론 칸의 경우에도 유럽과 미국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또한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한때 영화제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 영화제가 온전히 모든 것을 안배하면서 성장하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제’라는 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화와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분위기를 창출해가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영화제들의 물적, 인적 교류는 언제나 중요한 일이다.
비교적 이러한 역할을 동남아시아에서 유지해온 것이 싱가포르국제영화제다. 이제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40개국에서 3백여 작품이 출품된 규모 있는 영화제가 되었다. 한국 영화 중에서 <여자, 정혜>는 실버스크린 부문에 초청되어, 이윤기 감독과 주연배우 김지수가 각각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해 싱가포르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은 이라크 전쟁과 그 후의 여파를 다룬 오데이 라시드 감독의 <언더익스포저 (Underexposure)>가, 영시네마 부문은 홍콩영화 <그린 햇 (Green Hat)>이 수상을 하였고, 심사위원 특별상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 (Tropical Malady)>가 수상하였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전반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격려하는 것에 관심을 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자국과 주변 국가의 영화에 대한 인지력과 연결된다. 기본적으로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의 독립영화 신작을 발굴해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필립 치아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평판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근본적인 곳에서 새롭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가 새로운 영화제를 만들면서 싱가포르국제영화제의 규모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한국에서 개최하는 국제영화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지원에 의존하는 영화제의 경우 정책의 변화에 따라 의외의 결과를 맞이하기도 한다. 이것은 영화제가 자생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본적인 자본력을 어떻게 동원해야 하느냐는 현실의 문제와 부딪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의 정책에 의해 일관된 영화제의 규모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워진다. 자국 내의 경제적인 사정에 의해 영화제의 규모가 고무줄처럼 변화하는 것도 안정된 인상을 주기 어렵다. 국가의 정책과는 다른 영화제의 자율성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영화제로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이다.
국내의 많은 국제영화제들이 종종 지자체와 부딪히는 것도 자율성이 담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화와 개발도상국의 현실에 처한 실적주의는 영화제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영화제라는 것은 방대한 소비가 아니냐는 비판이 쉽게 쏟아져 나온다. 사실 영화제의 성과는 현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 될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영화제는 자국과 아시아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일종의 문화 투자의 장이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부상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위기와 모험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라는 창구를 통해 한국 영화가 세계의 창구로 나아가는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내의 영화제와 영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과 부산 지역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해마다 영화제가 끝난 후에 추산되는 경제적 이익에 관한 데이터들이 나온다. 문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숫자 너머에 있는 문화적 에너지이다.
국적을 넘어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은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그것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이끌어줌으로써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를 비롯한 여타의 영화제들이 성장할 가능성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러한 공식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아시아의 영화국가는 ‘이란’이었다. 그러나 이란의 영화를 그 어느 곳보다 열정적으로 소개한 곳은 부산국제영화제였다. 여기에 한 가지 교훈이 있다. 이란 영화의 수용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교두보라는 역할로 확대할 수 있었다. 국제영화제라는 이름에 알맞은 국제적 규모의 네트워킹은 더 큰 문을 두드리기 위한 중요한 시도들이다.
아시아에는 영화제가 정말 많다. 앞서 소개한 영화제 외에도 주목할 만한 아시아의 국제영화제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영화제(www.jiffest.com), 인도의 뭄바이영화제(www.iffmumbai.com)와 케랄라영화제(www.keralafilm.com)가 있다. 그러나 이들 영화제는 자국 문화와 자국 언어의 폭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또한 한국에서 열리는 여러 국제영화제들이 비판을 받는 것처럼, 국제적인 규모로 나아가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아시아의 여러 국제영화제들이 성장을 하는 데 기틀이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영화산업의 유치(여기에는 촬영장소 제공, 후반작업을 위한 산업적인 지원 등이 있다)를 위해 영화제를 프로모션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산업적인 목적보다는 자국 내의 문화를 고취하고 선전하는 경우가 있다. 두 가지 성격은 자연스럽게 뒤섞이기도 한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자국의 문화(혹은 영화)를 국제적인 관심으로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국 문화(혹은 영화)의 성숙을 위해 다양한 문화(영화)를 자국 내에 소개해야 할 필요성이다. 이것은 양가성의 게임이다. 대부분 전자에 관심을 두는 것에 반해 후자의 경우는 등한시되어온 측면이 있다. 단순히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를 통해 스스로를 성숙시킬 수 있을 때 네트워크는 자연스럽게 열리게 된다. 문화의 다양화는 결국 영화제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기틀이자 영화를 통한 보편적인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셈이다.
















